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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뵌 적없는 시할머님의 기일.

떼소르 2006. 6. 17. 10:21

샬롬!

 

  오늘은 시할머님의 기일입니다. 저는 크리스찬이라 제사라는 의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서 시아빠께도 늘 돌아가시면 그런 것은 없다고 이야기를 드리지만 아버님은 내심 섭섭해 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렇지만 조상님을 기억하고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은 의미가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가족이 모이는 일은 하려구요. 다만 상을 차리는 것은 생략하고, 우리들이 먹고 싶은 것으로...ㅋㅋㅋ~

   결혼해서 처음으로 제사라는 것을 해 봤습니다. 저는 친정에서 4대째 예수를 믿는 집 맏딸입니다. 평양에 기독교가 들어오고 개종을 해서 집안의 노비들 다 풀어주고, 그러신 증조부를 종친들은 '야수귀신'이 씌였다고... 그러셨다는군요. 암튼 그리하여 저희집엔 제사가 없습니다.

   시집을 와서 시댁에 유일하게 챙기는 제사가 시할머님제사.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어머님을 기억하시는 날이라 권사님이신 시어머님도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 아버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 계셨어요. 문제는 저였지요. ㅋㅋㅋ~<제사를 본 적 없으니 모시는 일은 더 난감. 무식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제가 하고 싶은대로 샐러드도 하고, 냉채도 하고...퓨젼요리를 조상님이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제 맘대로 했지요.>

   3년 뒤 동서가 시집을 왔는데, 울 동서는 제사를 제대로 모실 줄 아는 집의 맏딸이였거든요. 너무나 잘 알고, 너무나 잘하는거죠.ㅋㅋㅋ<그러니 제가 하는 것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게다가 아무 소리 안하시고 그저 잘한다고 하는 시어머님. 맘에 안드셔도 그나마 안한다고 할까봐 무조건 "괜찮아. 됐다." 라고 하시는 아버님...>

   동서가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까닭에 또  지방을 전전하며 사는 까닭에 어느새 전 손님이 되고, 울 동서가 음식장만을 하는 꼴이 되었는데, 늘 미안한 마음이였답니다. 왠지 제 짐을 동서에게 다 맡기고 있는 거 같아서... 제가 서울로 이사를 하고는 서로 분담을 해서 메뉴를 정한대로 각자 준비해서 상에 셋팅만 하게 되었답니다.   이젠 저도 좀 알아요.<그러나 아직도 상차림에 관한 아버님이 작은며느리에게 전적으로...그러니 늘 동서에게 묻는 편입니다.저는 ....>

   오늘이 저는 한 번도 뵌 적 없고, 아버님이 피난 내려오시기도 전에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님, 제겐 시할머님의 제사인데,  할머님에 대한 예의도 그렇지만 온 가족이 이런 날을 계기로 함께 모여서 할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버님이 자라셨던 함경도 길주의 이야기도 듣고, 또 우리 가족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정을 나누는 시간이란 것에 의미를 둡니다.

   이제 7월4일 이면 시어머님의 1주기가 돌아옵니다. 아마도 그날은 다를 것 같아요. 시어머님이셨지만 제게 마지막까지 사랑한다고, 가장 이뻐한다고 하셨던 어머님이 생각나서 마음이 오늘과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아들 녀석을 데리고 나가서 블랙으로 수트를 한 벌 주문했습니다.   다음 주 주말에 찾게 되는데, 어머님의 기일에는 아들녀석을 가장 이뻐하시던 어머님께 잘 챙겨 입혀서 데리고 갈려구요.

   한 번도 뵌 적 없는 시할머님의 기일은 형식이 더 앞서지만, 제게 살붙이는 아니더라도 가족으로서 사랑을 아낌없이 주셨던 어머님의 기일은 아무래도 미리부터 앞서가며 마음이 쓰입니다.시어른이시라고 해도 20 여 년을 넘게, 아니 제겐 이제 친정부모님 밑에서 살았던 시간과 시집와 시댁의 어른들과 함께 한 시간이 같은 비중이 되다보니 양가 부모님들에 대한 비중이 거의 같아졌답니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할머님...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제대로 인사 드릴께요.<이렇게 하늘을 향해서 인사를 날리며 주말을 시작하는 영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