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혜 인터뷰글 < 가슴에 '독'을 품다.>2003년
‘단점 없음’이 치명적 단점이었던 범생이 배우 이대연, 그에게서 찾는 ‘진짜 쟁이’의 모습
올해로 배우 경력 15년차인 그의 연기 폭은 사실 그리 넓지 않았다. 물론 지난번에도 내가 말한 바 있듯이 배우의 생명이 변신에만 있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역할을 맡아오면서 그 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그의 연기를 부정적으로 본 건 아니다. 한데 최근 드라마
<눈사람>과 얼마 전 막을 내린 연극
눈곱만큼도 ‘양아치스러움’이 없는 배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딴따라판’이라는 동네는 양아치스러움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버텨낼 수 있는 곳이다. 내가 11년째 잘 버티는 걸 보면
내게도 ‘양아치’ 같은 면이 조금은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는 배우 중엔 양아치스러운 모습이 눈곱만큼도 없는데 이 판에서 잘 살아가는 배우가
있다. 바로 이대연이라는 배우다. 난 그와 꽤 오랜 시간을 알아왔고 <비언소>라는 연극에서 한 무대에 서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했는데, 단 한번도 그에게서 실망감을 느끼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의젓하고 불평할 때도 정중히 하고 상대를 깎아내린다거나
남을 흉보는 일은 단연코 없었다. 연극작업이란 게 가족보다 더 가까워지지 않으면 하기 힘든 작업이라 몇달만 지내보면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의
단점들을 훤히 꿰뚫게 된다. 하지만 난 정말이지 그의 단점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단점 없음’은 배우를 택한 그에게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시인 황지우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 나의 깊이는 나의 한계였으니…”라고.
배우인 내겐 고생 안 하고 자란 것이 되려 콤플렉스가 됐듯 그에겐 어쩔 수 없는 범생이인 모습이 큰 한계였다고 그 스스로도 고백했다.
배우가 된 동기가 재밌다. 그는 연세대 신학과를 나왔다. 고등학생 때 독문과 다니는 누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정신세계를 동경하는 문학소년이었고
모태신앙인이었던 그는 순전히 낭만적인 이유로 신학과를 택했다. 그러나 그에게 신학은 낭만은커녕 너무나 딱딱하기만 했다. 결국 그가 ‘낭만’을
찾아 들어간 곳이 연대 극예술연구회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장로의 아들로 태어나 별다른 풍파 없이 모범생의 정코스만 밟아온 그의 범생이 기질은
낭만을 즐기는 데 방해만 됐다. 그는 그런 자신을 깨고 싶어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점잖다, 어른스럽다”는 소리가 지겨워 택한 딴따라의 길. 그러나 나이 마흔이 되고 보니 어거지로 될 게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단다. 말하자면 자아와 데면데면 타협을 하기로 했다는 거다. 정말 착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 성격차이일 뿐이지
형도 속으론 못된 생각 많이 하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맞는 말이라고, ‘40 불혹’이니 뭐니 하는 말처럼 사기가 어딨느냐며 자신은 그저 스스로
억압하는 데 익숙할 뿐이란다.
아내를 잃고도 광대짓을 해야 하는 운명
그는 현재 처가에 들어가 살고 있다. 그의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아이 맡을 형편이 안 됐기에 아이들은 장인장모님이 키워주기로 했는데 아이들과
떨어져 사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들 때문이라지만 매일매일 서로 얼굴을 대해야 하는 장인장모와의 동거는 참
잔인한 일일 것이다. 사실 많이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난 그런 그에게 잔인하게도 이렇게 얘기했다. 혹시 신께서 안온한 인생을 사는 그를 진짜
배우를 만들기 위해 아내를 데려가신 게 아닌가 하는…. 아닌 게 아니라 시인 황지우씨도 술자리에서 그에게 그러더란다. “대연이 넌 이제
쟁이로서의 배수진을 친 거다”라고.
배수의 진을 친다는 것은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서면 물에 빠져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는 것을 뜻한다. 뒤로 돌아서지 않고 적을 향해 독을
품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드는 모습이다. 예술은 어떤 형태로든 자연과 가장 가까이 가려는 시도다. 자연이 곧 신이라면 신을 향한 독기 없이는
예술을 할 수 없다는 말일까. 그는 요즘 전에 없던 짜증이 늘었다. 친구와의 우정을 주제로 한 연극
‘딸들이 수다떨고 싶은 아빠’
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됐다. 요즘 들어 부쩍 는 술자리마다 하도 마흔 타령을 했더니 후배 하나가 시집 하나를 선물했는데 거기 그런
내용이 있었다. 서른이 됐을 땐 낭떠러지에 선 느낌이었는데 마흔이 됐을 땐 허허벌판에 선 느낌이었다는…. 낭떠러지는 조심만 하면 되고 여차하면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있지만 허허벌판은 도망갈 곳도 없고 숨을 곳도 없고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곳도 없지 않느냐며 쓸쓸히 웃는 그의 얼굴에서
난 진짜 ‘쟁이’의 모습을 봤다.
오지혜 | 영화배우
사진/ 류우종 기자
스스로 억압하는 데 익숙한가 보다는 그의 말에 난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4년 전 교통사고로 그의 곁을 떠난 그의 아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난 그때 임신 4개월의 몸으로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찍고
있었기 때문에 소식을 전해준 후배는 내 건강을 염려해 한참을 고민하다 그 사실을 알려줬다. 그날 난 빈소에서 많이 울었다. 하은이 엄마도
불쌍했지만 자기가 자랑할 거라곤 착한 아내를 얻은 것뿐이었는데 어찌 그걸 앗아가실 수 있느냐며 굵은 눈물을 흘리는 그가 너무 가여웠기 때문이다.
그 뒤 몇번의 공연이 있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도 무대에서 광대짓을 하는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의 아픔’은 점점
잊혀졌다.
사진/ 독이 익으면 한이 되고, 한이 익으면 세상을 욕심 없이
바라볼수 있게 된다. 요즘 그의 연기가 활력을 갖게 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류우종 기자)
하은이 엄마 얘길 계속하다간 또 주책없이 눈물을 보일 것 같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
정권이 바뀌어 제일 좋은 게 뭐냐고 물었다. 자긴 정치에 문외한이라 정치나 경제가 어떻게 바뀔진 모르겠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진솔하게 얘기하는
대통령은 처음이라는 것. 전체적인 손익분기점으로 봤을 때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고 본단다. 사회 전체를 민주적인 분위기로 만드는
데 대통령의 솔직한 태도가 일조했다고. 어떤 아빠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엔 입술을 꼭 깨물며 땅바닥을 잠시 쳐다보더니 ‘딸들이 수다를 떨고
싶어하는 아빠’라고 답한다.